임시정부 수립일 변경
<한일관계사료집>에 따르면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몇 명이 4월 13일 국내에서 상하이로 건너간 날로 기록되어 있었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정부 수립을 공포한 날로 인정을 해버린 터라, 2018년까지는 공식적으로 임시정부 수립일이 4월 13일이었지만 학계의 요구에 따라 공개된 자료들을 검토한 끝에 100주년이 되는 올해 2019년부터는 4월 11일을 임시정부수립일로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임시정부 수립을 보다 뜻깊게 기억하고자 정부에는 임시공휴일 지정도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임시의정원을 창설하면서 신석우의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는 뜻으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제안이 결정되면서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출처 : Encyber>
정부청사의 위치는 1919년 상하이를 시작으로 1932년 항저우, 1935년 자싱과 난징, 1937년 창사, 1938년 광저우와 류저우 1939년 치장, 1940년 충칭까지 중국에 머무르다가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로 옮겨지게 되었죠.
1919년 4월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출처 : 두산백과>
상해임시정부 보다 두 달 앞선 1919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 한군명, 문창범, 이동휘 등 2,000명의 한인들을 통해 <대한국민의회>라고 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3월 17일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곳은 의회형 임시정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있는 형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군의 훈련을 책임지는 선전부, 자금 담당인 재무부, 무기 조달을 위한 외교부 등 집행부를 통해 의회, 사법, 행정 기능은 갖춰진 형태였죠.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이 창설되었고 여운형, 조동호, 손정도, 조소앙, 김철, 선우혁, 한진교, 신석우, 이광수, 현순, 신익희, 조성환, 이광, 최근우, 백남칠, 김대지, 남형우,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신채호, 진희창, 신철, 이영근, 조동진, 여운홍, 현장운, 김동삼 등 전국 각 도의 지역구 의원 29인이 참여하였습니다.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은 이동녕이 맡게 되면서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게 된 거죠.
하지만 상해임시정부와 비슷한 시점에서 경성부의 한성정부도 만들어지는 등 여러 곳으로 분산되면서 오히려 항일투쟁이 힘들다고 판단되어 통합을 시도하게 됩니다.
<출처 : 나무위키>
러시아의 대한국민의회와 상해임시정부가 통합을 시도해서 위치적 문제로 실패.
하지만 국민의회 인원을 포함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임시정부로 들어가면서 1919년 8월 대한국민의회는 해산을 하게 되었지만 상해 임시정부 역시 국내에 있던 한성 정부와의 통합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국내에서 결성되었다는 정통성을 지키며 기틀은 한성정부로 하고 위치와 국명은 상해임시정부의 뜻대로 한다고 합의가 되면서 1919년 9월 11일 상해에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고 임시 대통령으로 이승만, 국무총리로 이동휘가 추대되었습니다.
3.1운동 이후 국내외 총 7개의 임시정부가 등장했지만 그중 가장 먼저 결성된 항일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의 존재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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